[서울=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 2024년 갑진년 미술계는 ‘희로애락 칵테일’ 같은 분위기로 한 해를 보냈다.
전반적으로 미술시장 침체로 ‘미술품 잔치’인 아트페어도 시들해졌고, 광풍처럼 일었던 ‘아트테크’는 투자 사기사건으로 충격을 전했다경매시장은 하락세 지속으로 5년 만에 최악의 실적을 받았다. 글로벌 미술관인 프랑스 파리 퐁피두센터가 서울에 이어 부산 진출도 화제가 됐지만 유치를 규탄하는 논쟁이 이어졌다. 국민화가 이중섭 박수근 위작사건은 미국 유명미술관에서 터지는 황당한 소식도 있었다. 반면 미술인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미술품 물납제’가 시작됐고 근대미술관 건립 논의가 본격 진행됐다. 전시는 여성작가들의 약진이었다. 89세 조각가 김윤신은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생애 첫 개인전을 열었고, ‘아트시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명’에도 뽑혔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한국미술정보개발원이 미술평론가들과 꼽은 ‘미술계 이슈’를 정리했다.
◆여성 작가·여성 주제 전시 활약
지난 3월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진흙에 물들지 않은 연꽃처럼’은 불교 안에서 여성은 어떤 존재였는지를 살펴본 전시로 화제가 된데 이어 우리나라 여성조각가 1세대인 김윤신이 활약했다. 국제갤러리(3월)에서 첫 개인전, 이응노미술관(4월), 베니스비엔날레서 본전시에 참여하면서 K아트의 위상을 높였다. 지난 8월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여성작가들을 조망한 ‘천경자 작가 탄생 100주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연 ‘접속하는 몸-아시아 여성 미술가들’전시는 비엔날레급 전시로 주목받았다. 쿠보타 시게코, 오노 요코, 아만다 헹, 박영숙, 이불 등 주요 작가의 작품을 오랜만에 접할 수 있는 전시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4~9월 열린 한국 1세대 조경가 정영선의 개인전도 열려 종합과학예술같은 조경의 세계를 조명했다.
◆세 번째 ‘키아프리즈’ 키아프의 반전
영국 런던 프리즈서울과 한국화랑협회의 키아프 서울이 공동 개최 3회를 맞으면서 한국 미술계를 들썩거리게 만드는 중요한 동력이 됐다. ‘키아프리즈’라는 귀여운 이름을 얻은 데 이어 ‘촌스럽다’는 평을 받은 키아프가 올해는 대 반격으로 프리즈를 역전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같은 기간 열린 ‘뉴욕 아모리 쇼’를 눌렀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1,2회와 달리 유명 작가 대작은 덜했지만 ‘프리즈키아프’ 덕분에 해외 갤러리들의 한국 진출의 교두보 역할로 대형 미술관과 갤러리는 밤 늦도록 미술 파티가 이어졌다. 특히 지자체도 키아프리즈 일정에 신경 쓰는 등 눈에 보이는 영향력이 증가했다. ‘5회 계약’으로 시작해 2회가 남은 상황에서 사이먼 폭스 프리즈 CEO는 “키아프와 프리즈의 관계에 대해서 만족해 하고 있다”며 “서울에서 프리즈가 중단될 일이 없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혔다.
◆미술진흥법 첫 시행, 물납제 시작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내는 물납제가 국내 최초 진행됐다. 지난 10월 문화체육관광부는 국내 최초 물납 미술품 4점이 국립현대미술관 수장고에 반입됐다고 밝혔다. 지난 해 1월2일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으로 문화유산 등에 대한 물납제가 도입된 이후 첫 사례다. 물납 신청된 10점의 작품 가운데 이만익의 ‘일출도'(1991), 전광영의 ‘집합(Aggregation)08-제이유(JU)072블루(BLUE)'(2008), 쩡판즈(Zeng Fanzhi)의 ‘초상화(Portrait)'(2007) 2점 등 4점이 물납 허가를 받았다. 쩡판즈의 작품은 이번 물납을 통해 국립현대미술관이 처음으로 소장하게 됐다.
물납제는 상속세 납부세액이 2000만원을 넘고 상속재산의 금융재산가액보다 많을 경우에 한해, 문화유산이나 미술품으로 납부할 수 있게 한 제도다. 문화재·미술품 상속세 물납제 도입은 지난 2020년 5월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경영상 어려움에 보물로 지정된 불상 두 점을 경매에 내놓게 되면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미술품 경매시장 꽁꽁…낙찰률 65% 5년만에 최악
올해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이 지난 5년 간 대비 최저치로 급격히 냉각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 매출 규모가 작년의 약 75% 수준으로 불황기였던 2020년 수준인 약 1151억 원에 그쳤다.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이사장 김영석)와 아트프라이스(대표 고윤정)가 발표한 ‘2024년 국내 미술품 경매시장의 연말 결산’에 따르면 2024년 미술품 경매 낙찰총액 약 1151억원으로, ‘2023년 약 1535억원, 2022년 약 2360억원, 2021년 약 3294억원, 2020년 약 1153억원’ 등 지난 5년간 비교할 때 최저 수준이다. 낙찰총액은 김환기가 약 73억 7480만원(낙찰률 약 64.71%)으로 1위 자리를 되찾았지만, 작년 대비 약 50% 수준에 그쳤다.
◆ 근대 미술관 건립 논의
‘이건희컬렉션’으로 촉발된 국립근대미술관 건립 논의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국립20C(근대)미술관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지난 7월 세 번째 대규모 토론의 장을 개최했고, 8월에는 52개미술단체가 ‘이건희 기증관’ 포함 국립20C(근대)미술관 설립’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며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8월 열린 세미나에는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참석, 힘을 싣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국립근대미술관 건립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국립20C(근대)미술관의 부재는 왕정국가인 조선에서 자유민주국가, 국민국가인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과정의 부재를 의미한다. 이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과 고유성을 표상할 수 있는 기관인 근대미술관의 “없음”으로부터 비롯하는 일”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
2016년 대구시와의 계약 체결 후 8년 만에 완공 후 지난 9월 개관했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조성된 간송미술관의 유일한 상설 전시 공간으로 국비 160억 원, 시비 240억 원 등 4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9월3일~12월1일까지 열린 개관기념 국보·보물전 ‘여세동보-세상 함께 보배 삼아’는 간송이 문화보국 정신으로 지켜온 국보와 보물 97점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총 22만4000여명의 관람객이 방문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구시가 “대구간송미술관이 세계적인 문화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과 관련 미술인들은 문화관광을 위한 투자의 성공적 사례가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아트테크 찬물…미술품 투자 사기사건
지난 8월 유명 연예인을 광고모델로 내세워, 새로운 미술 투자 트렌드를 제시했던 대형 아트테크 업체 ‘갤러리K’가 특별 세무조사를 받고 있다는 보도가 되면서 사건이 수면위로 올라왔다. 갤러리K는 그간 연 7~9%의 수익을 보장하고 ‘미술품을 구매하면 이를 임대해 수익금을 주겠다’고 제안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못했다며 일부 투자자로부터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당했다. 혐의는 ‘후속 투자자로부터 받은 구매대금을 기존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일명 폰지사기’다. 투자한 사람만 천 백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월 사기 피해자의 수억 원대 집단소송이 이어지면서 미술시장에 찬물을 끼얹었다.
◆ LA카운티미술관 이중섭, 박수근 위작 사건
지난 2월 미국 LA카운티미술관에서 개관한 재미동포 기증 컬렉션(한국의 보물)전에 출품된 ‘이중섭·박수근 작가의 작품이 위작인 것 같다’는 보도로 한국화랑협회가 감정 전문가들을 파견,실견 감정 결과 ‘확정된 진작으로 볼 수 없다’는 공식 감정 평가가 나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겠다는 확답을 받았다’는 미술관측의 발표가 있었지만 이후에도 해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마이클 고반 라크마 관장은 “전시 도록 발행을 취소하겠다”고 밝혔다. 권위있는 미술관에서 위작논란에 황당하다는 국내 미술계 반응 속 “기증과 전시 계획 단계에서 적절치 못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추측이 무성했다.
◆퐁피두센터 서울 건립 이어 부산본관 유치 논란
한화문화재단이 63빌딩 별관에 퐁피두센터 한화 서울을 준비 중인 가운데 발표된 퐁피두센터 부산 분관(2027년 착공, 31년 개관 예정) 유치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부산시와 퐁피두 측과의 업무협약(MOU/2024.9.9)이 이루어진 가운데, 정보공개를 둘러싼 부산시와 언론을 비롯한 시민단체, 오피니언 리더들 간의 논쟁이 뜨겁다. ‘난장, 비엔날레-퐁피두유령’ 전시도 열렸다. 퐁피두 서울 분관은 2025년 63빌딩에 설립된다.
◆’낙서 훼손’ 경복궁 담장 복구
지난해 12월 말 충격을 준 경복궁 담장 낙서 사건이 이어졌다. 지난 5월 국가유산청은 10대 청소년이 경복궁 영추문, 국립고궁박물관 주변 쪽문에 남긴 스프레이 낙서를 지우고 복구하는데 1억5000여 만원이 쓰였다고 밝혔다. 주범 강모(30)씨는 1심 징역 7년, 40시간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이수, 5년간 아동·청소년·장애인 관련기관 취업 제한, 추징금 2억1028만 원을 선고받았다. 문화유산과 공공미술작품이 어떤 위험에 처할 수 있는지 대중에게 경각심을 일깨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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