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시스]김정현 기자 =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AI 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육자료’가 되면 개별 학교 현장에서는 외면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교육계 관측이다.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과몰입을 걱정하며 AI교과서 채택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학부모들이 많고, 교사들은 대체로 활용법을 익혀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즉각 거부권(재의요구) 행사 뜻을 밝히며 교과서 지위를 지키겠다는 태세지만 그럼에도 내년 1년 동안은 시범 기간으로 두고 속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기조에 호응하던 보수 성향 교육감들은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바뀌더라도 채택하라고 지시할 가능성이 높아 도농·지역 간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6일 교육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용 도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효력을 가지려면 국무회의 의결과 공포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교육부는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방침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해당 법률)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법률을 집행하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재의요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현 정부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어렵지만 정책적으로 지속성을 갖고 법과 원칙에 맞춰 추진하는 정책은 정치와 분리해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다시 국회가 표결에 붙여야 하므로 AI 교과서의 지위는 한동안 애매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육자료로 바뀐다면 가장 큰 차이는 학교의 채택 의무가 사라지는 것이다.
종전의 초·중등교육법은 ‘학교에서는 교육부 장관이 검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반면 통과된 개정안은 AI 교과서에 해당하는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육자료로 규정했고 교육자료에 대해서는 학교의 채택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다.
교과서와 교육자료 모두 AI 교과서 채택 주체는 학교다.
구체적으로 학교가 교직원 및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로 구성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고 심의를 거쳐야 한다.
만일 학교의 판단에 오롯이 맡겨진다면 AI 교과서는 일선 학교 100%가 채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서울 관악구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 입장에서는 1곳 당 500만~1000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라며 “(세수 결손으로) 교육청 예산이 줄면서 학교 기본운영비도 줄어들고 있는데 여력이 될지 고민”이라고 했다.
이 교장은 “학운위 심의를 받는다면 학부모들 사이에서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우려가 큰데 교육자료로 쓰는 일도 힘들지 않을까”라며 “교과서가 아닌 ‘코스웨어’로는 채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교직원들의 호응을 기대할 가능성도 높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는 내년 3월 AI 교과서 도입을 염두에 두고 연초부터 대규모 교사 연수를 진행해 왔으며, 겨울방학 중에도 추가 연수를 진행해 활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아예 채택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인 데다가 ‘교과서’ 지위 유지에 동의하고 있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교사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시범 운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디지털교과서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진행돼 왔던 만큼 적어도 종이 교과서를 보조하면서 수업을 풍부하게 하는 보조 교과서로 쓰이는 게 좋겠다”면서도 “현장 교사들에게 또다른 업무가 부담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고, 전문성을 가진 교사가 자율성을 갖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AI 교과서의 채택은 실질적으로는 학교를 관할하는 시도교육청, 즉 교육감의 성향에 좌우될 가능성도 크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일선 학교장은 “법안이 공포되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는 교육부 입장을 따를 수 밖에 없는데 차선책은 교육청”이라며 “교육자료라도 ‘선정하라’는 교육청 공문이 나오면 학교는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에서 학운위 심의를 거치도록 했지만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지침이나 매뉴얼, 재정사업의 형태로 교육자료 채택을 유도하거나 사실상 강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24일 보수 성향인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는 건의문을 내 민주당의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일부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서 이번 성명은 그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진보 성향인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24일 건의문은 입장문 채택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도 입장문을 내 “(교육감협 건의문은) 다수 교육감의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협의회장인 강 교육감 주도로 발표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과를 요구했고, 박종훈 경남도교육감도 유감을 표했다고 한다.
교육감협 단체 성명은 전국 교육감 17명 중 3분의 2 이상인 12명은 동의해야 낼 수 있는데 이를 충족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 교육감의 지적이다.
건의문을 둘러싼 교육감들의 파열음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이상 서울 등 진보 교육감들은 이번 건의문의 내용과는 상반된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끝내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육자료로 굳어질 경우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채택을 학교 자율에 맡길 수 있고, 반대로 보수 교육감들은 채택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다른 초등학교 교장은 “서울은 기기나 인프라, 문화 자체가 잘 갖춰진 터라 다른 지역보다 1~2년 늦는다고 해서 크게 차이가 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도 지역의 소규모 학교라면 금방 차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재의요구와는 별도로 AI 교과서의 지위를 교과서로 보되 내년 한 해 동안을 일종의 시범 기간으로 운영하면서 ‘속도 조절’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부총리가 야당 측에 협상 카드로 제안한 바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감들의 성향 차이에 따른 지역 간 채택 격차 문제도 좁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이 부총리는 “재의요구가 돼서 이 법안이 통과가 최종적으로 실행이 안 되는 경우에도 저희가 야당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겠다”며 “국회 및 법률(재의요구)과 관계 없이 1년 동안 시범 기간을 갖고 교과서 지위는 유지하지만 원하는 학교, 교사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범 기간에 많이 (채택)한 교육청이 성과가 더 많이 나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바로 다음 학기라도 적게 (채택)한 교육청이 따라올 수 있다. 학부모나 교사 요구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자녀들의 디지털 기기 과몰입을 걱정하며 AI교과서 채택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학부모들이 많고, 교사들은 대체로 활용법을 익혀야 하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즉각 거부권(재의요구) 행사 뜻을 밝히며 교과서 지위를 지키겠다는 태세지만 그럼에도 내년 1년 동안은 시범 기간으로 두고 속도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기조에 호응하던 보수 성향 교육감들은 AI 교과서가 교육자료로 바뀌더라도 채택하라고 지시할 가능성이 높아 도농·지역 간 격차가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26일 교육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에서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를 ‘교과용 도서’에서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안이 효력을 가지려면 국무회의 의결과 공포 절차를 밟아야 하지만 교육부는 국회에 재의를 요구할 방침이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갖고 유감의 뜻을 밝히면서 “(해당 법률) 개정안이 정부로 이송되면 법률을 집행하는 주무부처 장관으로서 재의요구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부총리는 “현 정부에서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어렵지만 정책적으로 지속성을 갖고 법과 원칙에 맞춰 추진하는 정책은 정치와 분리해 계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거부권이 행사되면 다시 국회가 표결에 붙여야 하므로 AI 교과서의 지위는 한동안 애매한 상태에 놓이게 됐다.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육자료로 바뀐다면 가장 큰 차이는 학교의 채택 의무가 사라지는 것이다.
종전의 초·중등교육법은 ‘학교에서는 교육부 장관이 검정한 교과용 도서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반면 통과된 개정안은 AI 교과서에 해당하는 ‘지능정보기술을 활용한 학습지원 소프트웨어’를 교육자료로 규정했고 교육자료에 대해서는 학교의 채택 의무를 부여하지 않는다.
교과서와 교육자료 모두 AI 교과서 채택 주체는 학교다.
구체적으로 학교가 교직원 및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로 구성되는 학교운영위원회를 열고 심의를 거쳐야 한다.
만일 학교의 판단에 오롯이 맡겨진다면 AI 교과서는 일선 학교 100%가 채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관측이다.
서울 관악구 한 초등학교 교장은 “학교 입장에서는 1곳 당 500만~1000만원에 이르는 비용을 들여야 할 것”이라며 “(세수 결손으로) 교육청 예산이 줄면서 학교 기본운영비도 줄어들고 있는데 여력이 될지 고민”이라고 했다.
이 교장은 “학운위 심의를 받는다면 학부모들 사이에서 자녀의 디지털 기기 사용에 우려가 큰데 교육자료로 쓰는 일도 힘들지 않을까”라며 “교과서가 아닌 ‘코스웨어’로는 채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교직원들의 호응을 기대할 가능성도 높지 않은 상황이다.
교육부는 내년 3월 AI 교과서 도입을 염두에 두고 연초부터 대규모 교사 연수를 진행해 왔으며, 겨울방학 중에도 추가 연수를 진행해 활용 부담을 줄이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아예 채택을 거부하겠다고 선언한 상태인 데다가 ‘교과서’ 지위 유지에 동의하고 있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도 교사의 자율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시범 운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조성철 교총 대변인은 “디지털교과서는 과거 노무현 정부 때부터 진행돼 왔던 만큼 적어도 종이 교과서를 보조하면서 수업을 풍부하게 하는 보조 교과서로 쓰이는 게 좋겠다”면서도 “현장 교사들에게 또다른 업무가 부담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고, 전문성을 가진 교사가 자율성을 갖고 활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다만 AI 교과서의 채택은 실질적으로는 학교를 관할하는 시도교육청, 즉 교육감의 성향에 좌우될 가능성도 크다.
사정을 잘 아는 한 일선 학교장은 “법안이 공포되지 않는 이상 학교에서는 교육부 입장을 따를 수 밖에 없는데 차선책은 교육청”이라며 “교육자료라도 ‘선정하라’는 교육청 공문이 나오면 학교는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에서 학운위 심의를 거치도록 했지만 교육부나 교육청에서 지침이나 매뉴얼, 재정사업의 형태로 교육자료 채택을 유도하거나 사실상 강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난 24일 보수 성향인 강은희 대구시교육감이 회장을 맡고 있는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는 건의문을 내 민주당의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일부 진보 교육감들 사이에서 이번 성명은 그런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진보 성향인 정근식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24일 건의문은 입장문 채택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이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지적했다.
천창수 울산시교육감도 입장문을 내 “(교육감협 건의문은) 다수 교육감의 동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협의회장인 강 교육감 주도로 발표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사과를 요구했고, 박종훈 경남도교육감도 유감을 표했다고 한다.
교육감협 단체 성명은 전국 교육감 17명 중 3분의 2 이상인 12명은 동의해야 낼 수 있는데 이를 충족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 교육감의 지적이다.
건의문을 둘러싼 교육감들의 파열음이 공개적으로 표출된 이상 서울 등 진보 교육감들은 이번 건의문의 내용과는 상반된 독자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끝내 AI 교과서의 법적 지위가 교육자료로 굳어질 경우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채택을 학교 자율에 맡길 수 있고, 반대로 보수 교육감들은 채택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 다른 초등학교 교장은 “서울은 기기나 인프라, 문화 자체가 잘 갖춰진 터라 다른 지역보다 1~2년 늦는다고 해서 크게 차이가 날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도 지역의 소규모 학교라면 금방 차이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는 재의요구와는 별도로 AI 교과서의 지위를 교과서로 보되 내년 한 해 동안을 일종의 시범 기간으로 운영하면서 ‘속도 조절’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이 부총리가 야당 측에 협상 카드로 제안한 바를 실행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교육감들의 성향 차이에 따른 지역 간 채택 격차 문제도 좁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다.
이 부총리는 “재의요구가 돼서 이 법안이 통과가 최종적으로 실행이 안 되는 경우에도 저희가 야당을 지속적으로 설득하겠다”며 “국회 및 법률(재의요구)과 관계 없이 1년 동안 시범 기간을 갖고 교과서 지위는 유지하지만 원하는 학교, 교사들이 (사용)할 수 있게 하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시범 기간에 많이 (채택)한 교육청이 성과가 더 많이 나는 상황을 생각해볼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바로 다음 학기라도 적게 (채택)한 교육청이 따라올 수 있다. 학부모나 교사 요구가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 출처 : https://www.newsis.com/view/NISX20241226_0003011485